“골로새서가 계시한 찬송의 비밀” (1)
글 이철구
Ⅰ. 들어가는 말
이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천사의 우렁찬 찬양을 받으셨다(사 6:3, 계 4:8).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을 찬양할 악기를 예비해 두셨다(겔 28:13).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시기를 어떤 재물의 드림보다도 기뻐하셨으며, 피조물(被造物) 인간을 하나님 찬송하기 위해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다(사 43:21).
하나님을 예배(Worship)하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세미나는 세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째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 중에 ‘신령(영)’에 담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고, 둘째는 ‘진정(진리)’이란 무엇이며 그 진정을 담은 찬양에 대해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 합당한 21세기 찬송’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신약성경 골로새서 3장 16절과 에베소서 5장 19절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라는 말씀을 통해 많은 신학적 의견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2천여 년 전의 성경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啓示) 말씀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세미나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라는 말씀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번 주제의 핵심은 첫째, 개신교 교회음악의 방향감을 회복시키고, 둘째, 개신교 교회음악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본질적인 접근 방법을 모색해보았으며, 끝으로 셋째, 찬송의 세 가지 분류를 통해 앞으로 21세기 찬송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신령(영)과 진정(진리)의 예배와 찬송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영과 진정성이 담긴 찬양을 하라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드리는 자의 찬양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가?’ 하는 방향성(direction)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완벽한 형식(형태)이 갖추어졌더라도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고 있는 가’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예배는 무가치한 의식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요,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The Service That is Acceptable Unto God)’는 요한복음 4장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는 말씀처럼 경외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잠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서 만난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인 사마리아 사람은 모세오경(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함)을 통해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유대 백성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여인이 말한 그리심 산은 신명기 11장 29절에 기록된 ‘축복의 산’으로 사마리아인은 하나님께 예배 장소로 예루살렘보다 더 중요한 장소로 여겼다(신 11:29; 27:12, 수 8:33). 또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20절)’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곳이 모리아 산이요 이곳이 바로 예루살렘(창 22:2)이며, 이 예루살렘 성전이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절대적인 중앙 성소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5)이라 믿었다. 이에 대해 예수는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 ~중략,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1)”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하신 말씀은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준비가 되었는지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영어 성경은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라고 되어 있으며,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요 4:24)”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표준새번역 역시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1. 신령(靈, spirit)
신령(루아흐) ‘Spirits’는 본래 ‘바람’, ‘숨’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특히 하나님이 인간에게 불어넣은바 생명을 갖게 되었던 생명의 숨이기도 하다(창 1:2), 2:7, 6:17, 7:15, 8:1). 또한, 영은 혼(魂)과 마음(心)과 한가지로 인간의 지적 기능도 나타내며(욥 20:3, 사 57:16), 영은 나무나 등에도 내재하며 보이지 않는 정령, 나쁜 영, 혹은 선한 영 등에도 존재한다(삿 9:23, 삼상 16:14, 왕상 22:21, 막 1:23, 고후 11:4, 계 16:12). 그러나 영이 성서와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서의 영이다. 즉 예언 및 선교에 있어서 일(역사)하고, 고백과 기도와 찬미와 예배를 인도하며, 또 신자와 교회 안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다.
따라서 영은 속 사람의 실체로 비물질적 성질이며, 하나님의 영과 직접 교통할 수 있다(롬 8:16).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가지 축복 중 첫 번째 말씀인 마태복음 5장 3절의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s /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 의미는 ‘Spirits’가 의미하는 정신(Spirits) 혹은 영혼이 가난해야지만 축복(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적 예배는 하나님만을 향한 방향성이 확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신령한 예배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배의 규율이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며, 그 예배가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집중하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에 있다. 결론적으로 신령한 예배는 하나님의 영적인 호흡을 받아 탄생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마땅히 바라보며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교회음악의 방향성
어느 물리학 교수가 쓴 글에서 ‘시간의 방향성이란? 자연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시간 대칭성을 갖는다. 그러나 시간은 늘 시간의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불변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절대적 불변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불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독교에서 죄(罪)의 개념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언행 심사와 삶의 원리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뜻을 거역하며 사는 것을 뜻한다.
구약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타-(ḥattā'ah)’라고 하여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하말티아(hamartia)이라고 하여 ‘표적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죄란 ‘인간이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계시(啓示) 및 계율(戒律)을 무시하는 불신앙의 태도’를 말하며 이렇듯 죄의 정의는 간단명료하다.
죄에 대한 정의를 간단명료히 내릴 수 있는 것처럼, 기독교 교회음악도 교회음악이냐 아니면 세속음악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을 매우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기독교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이냐의 기준은, 그 음악의 지향점과 방향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회음악을 정의 하는데 있어서 음악적 장르(genre)는 별 의미가 없다. 또한, 외형적으로 볼 때, 클래식 음악이 팝이나 대중가요보다 역사적으로나 음악 질적으로 교회음악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회음악의 기준은 외적인 음악적 아름다움이나 구조, 그리고 질적인 깊이 등에 있지 않고, 그 음악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가?’ 하는 방향성에 있다.
또한, 비기독교적 세속음악의 정의는 그 음악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과 목적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자연, 동물, 사랑, 사물 등 그 지향점이 세상을 향하고 있는 음악을 말한다.
2. 진정(진리, 眞理, truth)
진정은 진리와 같은 말로 히브리말로 ‘에메스’라 하며 영어로 ‘truth’는 ‘진리’, ‘진실’, ‘참되다’, ‘실재하는 사물’, ‘사건’, ‘사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성서에서의 진리는 계시(그리스도)에 의해 보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구약에서의 진리란 하나님의 진실이 진리(에메스)이며,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시 19:9, 86:11). 신약에서의 진리는 그리스어 <알레-데이아>로 어원적으로는 ‘감춘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속성의 표현이다(고전 5:8, 고후 7:14, 엡 5:9, 빌 1:18).
(1) 진정(진리)과 본질
구약의 하나님 말씀과 율법 같은 하나님 의지의 나타나심을 진리라고 하며(시 19:9, 86:11), 또한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했다(고후 4:4:2, 엡 1;13, 골 1:5, 딤후 2:15, 약 1:18).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과 동의(同義)로 해석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진리이다(요 5:39).
따라서, 이 세상의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며, 그 진리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앞에서 주지(周知)했던 것처럼 인간의 과학과 상식으로는 불변할 것이라 확신하는 시간(時間)마저도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셨다(수 10:12-14).
이처럼 천지 만물의 창조나 삼라만상의 불변 이치도 하나님께서 영역에 속한다. 진리란 곧 본질이란 말과 같으며,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예수님 자신으로 구체화 한 계시이다.
(2) 진정(진리)과 본질의 찬양
진리와 본질의 반대 개념은 허위(虛威)이며, 진리와 본질이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요시하여 위세와 허세를 형식주의(形式主義)라 말한다. 물론 예배에 있어서 형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본질의 왜곡이나 본질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예배만 살펴보아도 나라와 민족, 종족과 교파에 따라 많은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일부 미국의 흑인 교회나 아프리카 등지의 교회에서의 예배는 거의 3시간이 넘도록 춤과 노래를 부르며 예배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 반면에 우리 한국 교회 내에서도 거룩함을 강조하여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엄숙히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예배 시간 내내 손을 들어 찬양하며 기쁨에 넘치는 분위기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다.
이렇듯 예배의 본질은 하나지만 드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으며, 그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거나 잘 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진정(진리)과 본질의 찬양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음악은 형체가 있어 사물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 형이하학(形而下學)적인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없어 분별하기 어려운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이고도 관념적 예술이다. 따라서 진리와 본질의 찬양이란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우며, 드리는 자의 주관적 신앙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정성이 담긴 찬양은 ‘영과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 즉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드리는 찬양이다. 이처럼 찬양은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어서 찬양을 ‘곡조 붙은 기도’라 하는 것이다.
_ 다음 장에 “골로새서가 계시한 찬송의 비밀” (2)가 이어집니다.
_ 이 글은 찬송가작가총연합회가 2011년 6월 10일 연동교회에서 주최한 제9회 찬송가 세미나에서 이철구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이 발표한 내용입니다.